흑조를 보기 위하여

 우리는 정해진 일정대로 답사를 마무리한 적이 드물다.  이런 상황이 기후를 보러가기 때문이라면 혹시 이해가 될까?  그렇다 핑계를 댄다면.  기후를 보러 다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된다.  오늘의 예보를 보니 이번 답사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이번 답사는 여러 가지의 목적이 있지만, 그 중 흑조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어제 예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흑조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일행의 안전은? 등 때문이었다.
  방학이기도 하고, 흑조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일행이 많다. 그러다 보니 출발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사태를 수습하고 예정보다 40분 늦게 출발할 수 있었다.  1차 집결지는 오창 휴게소로 정하였다. 오창은 특별한 이유 없이 정한 곳이다. 누군가도 그랬지만, 이유 없이 음성 휴게소는 싫고, 이천은 너무 가깝고, 그래서 정한 곳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늦어진 것에 대한 민망함 때문에, 뭔가를 보여야 하겠는데, 오히려 압박감으로 더 이야기가 안되었다. 강의도 해보면 잘 되는 날이 있고, 안 되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잘 안 되는 날인가 보다. 오창에서 일행에게 거의 처음으로 물은 말이, 여기까지 오는 중에 본 경관이 경부고속도로와는 뭐가 다른 가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의 지형이라(적어도 중부지방에서는), 고속도로도 다르다. 아마도 경부선을 타고 가면, 남이까지 터널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부선에서는 이미 4개의 터널을 지났다. 이름도 퍽 쉽다. 처음 시작부터 중부 1터널, 2, 3, 4터널. 마치 나처럼 머리 안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은 것 같다.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라고 핀잔께나 들었을 것 같다. 동네 이름을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하는 생각이 적지 않다.  더 동쪽으로 가면 중앙고속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의 터널은 중부와 비할 바가 아니다. 훨씬 더 자주 긴 터널을 마주치게 된다. 오창을 막 떠나려 하는데,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오늘 전라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데요." 이거 땡잡았다고 해야 할지, 눈 걱정을 해야 할지.
  어느새 차는 회덕을 지나 호남선을 달리고 있다. 이제 여기 저기서 대나무 숲도 보이는 것을 보니 차령산맥을 넘어선 모양이다. 나는 이쯤에서 학생들에게 가옥 경관을 유심히 보라고 주문하였다. 처음에 나와 답사하는 학생들은 좀 곤혹스러운 것 같다. 뭔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줄 알고 왔더니, 가끔 뭘 보라고 하는 것이 고작이고, 아니면 묻기만 하니 꽤나 괴로운 모양이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고참들은 여유가 있고, 알아서 잘 본다. 이 쯤이면, 뭘 물을 것인가를 알아차리고, 미리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꽤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가옥 경관은 이번 답사의 핵심이다. 우린 오늘 밤, 가옥 경관을 갖고 끝없는 토론을 벌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오늘 늦은 것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흑조 얘기와 더불어 이 놈에 가옥 경관 때문이다. 어젯밤, 새벽까지 마루라는 놈을 갖고 결론 없는 토론을 벌여 놓았다.  모든 것은 오늘 밤으로 미루고. 그러니까 이번 답사의 큰 특징을 찾아보면, 밤의 토론이다.  사실 나는 그간 답사마다의 토론에서도 많은 것을 건져왔다.   여산에서 각자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삼례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간 나는 이유 없이 소위 말하는 호남평야 답사를 많이 한 편인데, 이 곳으로 빠져나가기는 처음이다. 호남평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들른 것 같다.  어떤 글을 읽다가 '나는 이 곳에 몇 번을 오고서 글을 쓰고 있다'하는 것을 보면 좀 우습기도 하고, '나는 뭔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동봉으로 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익산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주로 동봉으로 향하였다. 아마 호남평야란 곳을 제대로 보려면, 동봉으로 가서 대아리부터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봉에 가면, 초행자는 배가 터질 정도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삼례 시내를 벗어나니 말 그대로 광활한 만경들이다.  만경들은 역시, 누런 들판일 때가 제격이다.  만경들에서 처음 차를 세운 곳은 춘포의 만경제방이다.  춘포에서는 과거 일본인들이 거점이었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장촌에는 그들 지주 중에 누군가 살았던, 2층 짜리의 웅장한 일식 가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건물 외에도 27번 국도에서 면사무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웬만한 사람이면 일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2년 전에 우리 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인솔하고 이 곳을 걸으면서 뭔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했더니, 즉시 그 대답을 하였다. 제방에 올라서니 1920년대에 일인이 만경강 직강 공사를 하면서 만들어진 구하도가 바로 앞에 있다. 막 차가 신복으로 향하려는데, 눈이 내리고 멀리 보니 꽤 눈이 쏟아 지고 있다. 이제 기대하던 흑조권에 들어온 모양이다.
  제방을 따라 3km 정도를 서쪽으로 달리니 신복이다. 눈이 점점 많아진다. 이제 질문 거리가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멀쩡하더니, 왜 여기는 저렇게 눈이 쏟아지냐?'  '평택평야와 만경 들이 경관적으로 다른 것이 뭔가?' 이곳에 가면 물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  내가 처음 이곳을 갔을 때는 아예 배가 터져 버린 줄 알았다. 그 후로 나는 서해안 답사 때는 꼭 이곳을 인솔하였다. 3km 정도를 걷는 것이다. 눈이 왜 쏟아지냐는 물음은 후로 미루고, 두 평야는 분명히 다르다. 평택평야의 물은 아산호에서 끌어올린다. 만경들의 물은 대아저수지와 경천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온다. 그러니 한 곳은 낮은 곳의 물을 계속 위로 끌어 올려야 하는 시설이 필요하고, 한 곳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잘 흘러 갈 수 있도록 물길만 만들어 주면 된다. 바로 경관은 그렇게 만들어지며, 그래서 지리학자에게 경관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신복에 가니 북쪽으로 소뿔 모양의 구하도가 남아 있다. 아주 전형적이다. 가을에 황금들판이었으면, 더욱 어울렸을 것 같다. 바로 앞에는 익산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는 비닐 하우스가 꽤 보이는데, 여름에 가면, 그 안에 방울토마토가 꽉 차 있다. 남쪽을 보니, 몇 십m도 안될 것 같은 구릉지가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만경들과 김제들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다. 두 개의 들은 쓰는 물이 다르다. 김제들의 물은 주로 섬진강 물이다. 섬진강 물이 어떻게 그곳까지 왔는지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방 도로는 만경교에서 끝났다. 만경교를 건너서 광활면으로 향하였다. 만경교는 경사도 없고, 그리 길지 않는 다리인데도 설해 방지용 적사함이 적어도 10m 간격(그 이하일 지도 모른다)으로는 놓여 있는 것 같다. 눈이 상당히 내리는 모양이다.  김제를 경유하여 최단 거리로 광활면에 도착하였다. 광활은 새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이 없는 면이다. 그렇게 기다렸던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학교에서 서해안의 눈은 '와당땅 뚱땅' 하면서 요란스럽게 내린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눈은 조용하다. 학생들에게 다시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제주도에서 자란 나는 제주도의 눈과 이곳의 눈이 같을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답사가 없었으면 그것도 오늘이 아니었으면,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우리가 찾는 옥포리 화양 2구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이 어려웠다.  우리가 굳이 화양 2구를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집을 잘 보여 주는 두 분(
정복례 할머니이철만씨)이 계시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분의 집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곳의 가옥은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다.  우선 규칙적으로 여섯 가구씩 남북으로 교차하면서 배열되어 있다. 군산의 평화촌이나 부안의 계화도를 가본 경험이 있으면, 세 지역을 비교한다면 더 볼 것이 많다.  모두 간척한 땅이다.  평화촌은 일본 사람들이 일본인을 이주시키기 위하여 간척한 곳이고, 계화도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서 1960년대에 바로 우린 민족을 위해서 간척한 곳이다. 그런가 하면, 광활은 좀 다르다. 일본 사람들이 간척을 하고, 운암제를 만들 때의 수몰민들을 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그런 이 곳의 가옥은 처음에는 방 두 개에 부엌이 하나 달린 초라한 초가였다. 바로 지금처럼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쏟아진다면, 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초기의 이주민들은 그 것을 막느라고 짚으로 엮은 나래를 엮어 달았다. 그것이 점차 확장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북쪽의 가옥은 방이 세 개이고, 방 뒤로는 땅광이 있다.  앞으로는 툇마루와 그 앞에 토방이 있다.  부엌도 많이 넓어졌다.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안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다.  남쪽의 집은 많이 개량되었는데, 그 중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 땅광이 없다는 것을 빼고는 북쪽의 집과 비슷하다. 땅광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흡수되기도 하고, 남은 것은 방에 흡수되었다. 그래서 북쪽의 집보다 방이 넓다. 정복례 할머니 집과 이춘만씨의 집은 북쪽의 집이다. 정복례 할머니는 이주 초기에 이사를 왔고, 이 곳에서 늙으셨다. "학생들 공부하라고 집 안 고쳤어."라고 농담도 잊지 않으셨다. 우리가 처음 그 분을 뵈었을 때도.
  우리는 죽산을 지나 계화도로 향하였다. 계화도에서는 주민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렵다. 우리가 답사한 지역 중 가장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마을을 둘러본다. 사진을 찍기 어려울 만큼 많은 눈이 쏟아진다. 마을 끝에 잘 차려진 한 묘에서 내려다보는 계화리의 모습이 잘 정리된 간척촌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초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맛배 지붕으로 지은 조립식 건물이다. 적어도 여섯 번 이상 들른 것 같은데도, 집 안을 들여다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가옥 내부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눈도 많이 내리고, 날도 어둡고 숙소로 갔으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일행들은 양이 안 차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법성포를 보아야 한다고 항변이다. 아마도 눈 내리는 모습이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화도 간척지의 서쪽 방조제를 따라서 만들어진 705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변산반도로 향하였다. 30번 국도와 만나서 우회전을 하였는데, 바람 모퉁이까지는
해안단구 상을 달리고 있었다. 그 바람 모퉁이에 못 미쳐서 차를 새울 수 있게 터를 만들어 놓아서 해안단구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서해안에서 그리 쉽게 볼 수 없는 해안 단구이다. 변산해수욕장 바로 직전 커브에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방포 쪽으로 보면, 하얀 눈 속에 초록의 밭을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이 지역의 경관이다. 겨울에도 초록을 볼 수 있는 곳. 계속 진행하면, 왼쪽으로 해안단구와 그 곳의 겨울철 토지이용을 볼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채석강은 지형적으로나 경치로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날도 어둡고, 기후적으로도 그렇고 그냥 지나쳤다. 채석강을 지나면 그 유명한 위도로 가는 정기 여객선이 있는 1종 어항 격포이다. 모항 해수욕장을 바로 지나면, 왼쪽으로 천연기념물 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다. 뭐 저런 걸 천연기념물까지 지정했을 까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아마도 이 곳이 그 북한계인 모양이다. 그 곳에 철망을 왜 쳐 놓았는지, 호랑가시나무가 어떻게 번식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더 이상은 자라지 말라'는 경고라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완전히 날이 저물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호랑가시나무 사진을 찍느라고 난리이다. 사실상의 오늘 답사는 끝났는데, 여기까지 오고서 그냥 가면 아까운 곳이 한둘이 아니다.  줄포와 곰소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줄포만(곰소만) 안에 깊숙이 자리한 줄포는 조기잡이의 어항으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간석지가 점차 확대하면서 배의 출입이 불가능해졌고, 그 기능은 곰소로 넘어갔다. 곰소도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과거에 줄포에서 위도로 가던 여객선은 격포로 넘어간지 오래다. 곰소에는 젖갈을 판다는 간판이 동네를 치장하고 있다. 규모가 꽤 큰 남선 염전도 있고, 주변에는 대하 양식장이 점차 늘고 있다. 어느 지도에 보니 감귤관광농원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일행 중에 코스를 담당하였던 친구는 가기도 전에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기다. 감귤이 아니라 감골이다. 지도 좀 잘 만들 일이지.
  우리는 화순 이양면까지 가야한다. 날도 저물고, 눈도 계속 내리고 있고. 우리 차는 일단 고속도로까지 최단 거리를 택하기로 하였다. 줄포, 고부, 정읍으로 코스를 잡았다. 먼저 이야기를 해 둔다면, 눈이 내릴 때는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줄포에서 고부까지(710번 지방도)는 사람들이 눈에게 완전히 항복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달릴 수 없는 길이다. 몸이 긴장이 되니, 뭐 생각나는 것도 없고, 이야기 해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저게 그 유명한 두승산이다'는 정도 밖에. 날이 저무니 기온도 떨어지고 눈이 녹지도 않았다. 계화도까지만 하여도 눈이 많이 쏟아져도 곧 녹아 내려서 걱정이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고부에서 만난 29번 국도는 매우 반가웠다. 그러나 잠시. 차들은 속도를 내는데, 군데군데, 빙판이다. 정읍에서 고속도로를 올라설 때까지만 하여도 '이제는 다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꽤 내륙으로 들어 왔는지, 눈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갈 만 하였다. 그러나 1분도 안되어, 우리는 주차장 맨 끝에 서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저 놈의 차가 나가야 우리도 나갈 텐데, 끝이 보이지 않는 주차장이다. 도대체 사고가 났나, 아니면 이 정도의 눈에 쩔쩔 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주말이라 차가 많아서? 일행 중에 불평이 터져 나왔다. "왜 하필이면, 주말에 왔냐?" 이유는 호남터널이었다. 우리는 이제 노령산맥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흑조 때문에 해안에 내리던 눈이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노령산맥을 만나서, 다시 강해진 것이다. 바로 이 눈과 산맥에 차들이 모두 백기를 들었다. 호남터널까지의 속도는 시속 0km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백양사를 지나니(바꿔 말하면, 노령산맥을 지나니) 어느 정도 달리는 것 같다. 지형이 기후에 특히 눈에 어느 만큼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서해안에서 상륙한 구름이 해안에 가까운 곳에 눈을 내리고, 그 힘이 쇠잔한 듯하다, 산을 만나면서 다시 강해진다.
  동광주로 나가서 그 유명한 화순의 주남마을을 지나, 우리의 숙소가 있는 이양면의 품평리에 이르니 시간이 꽤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예외 없이 이곳에도 펑펑 쏟아진다. 눈을 맞았더니 얼굴이 따갑다. 이제 '와당땅 뚱땅'이다.

* 여기서 말하는 흑조는 시베리아 기단이 강하게 확장할 때, 그 찬 공기와 따뜻한 해수면 사이에 형성된 불연속선(여름철 냉장고에서 꺼내 물 컵에 만들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것)의 구름에 의해서 내리는 눈을 말한다.  군산과 제주의 눈은 바로 이의 예이다.  

* 여기서의 오늘은 1999년 12월 18일이며, 이 글은 1999년 12월 22일에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