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방에도 마루(대청)가 있는가?


  새벽까지도 펑펑 쏟아진다. 답사가 잘 될지 걱정이다. 오늘은 끝으머리이긴 하지만, 소백산맥과 해안산맥을 넘나들어야 한다. 아침에 깨어보니 예상대로 온 세상이 하얗다.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걱정이다. 그러는 사이 한 팀은 쌍봉사를 보러 간다고 출발을 선언한다. 다행이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서, 해가 뜨니 서서히 녹기 시작하였다. 우선 보림사로 가기로 하였다. 역시 예정에 없던 코스였다. 이제 코스 담당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코스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이렇게 뒤죽박죽이라니. 열 받을 만도 하다.  
  보림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839번 지방도를 가다 봉림리에서 보림사 표지를 보고 피제로 가는 길로 들어섰는데, 피제는 쉽지 않았다. 교통량은 꽤 되어 보였지만, 고도가 높고, 음지라 눈이 거의 그대로였다. 보림사는 국보가 두 점, 보물이 세 점이나 갖고 있는 절이다. 국보를 보려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가을에는 그냥 들어간 것 같은데, 입장료를 받는다. 나는 기후학 강의를 하면서 기온역전을 설명할 때, 절은 대부분 역전층이 끝나는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절은 대부분 명당일진데, 바로 그 지점이야  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다. 나는 풍수는 잘 모르지만, 가장 온난한 곳이니, 덜 추워서 여러 가지로 유리할 것이다. 나는 절로 가지 않고, 주변의 마을과 식생을 둘러보았다. 어제 동서울을 지날 때 학생들에게 지나는 산의 식생을 잘 보아두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쯤 왜 그것을 보라고 했는 지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식생은 기후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경관의 하나이다. 중부지방의 식생과
남부(호남)지방의 식생은 어떻게 다른가? 여름철에 답사를 하면서 아무리 보아도 구분이 쉽지 않았다. 꼭 겨울 식생의 차이를 보고 싶었다. 식물을 전공하는 사람이 이 말을 듣는다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할 것이다. 잎이 다 떨어졌는데, 식생을 본다니? 그렇지만 겨울의 차이가 명확했다. 동서울에서 본 식생은 마치 밤나무 과수원을 보는 듯 하였다. 바닥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보림사의 식생이 분명하게 다른 것은 진한 초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림사 담장을 따라서 있는 팽나무(?)를 따라서 송악 줄기가 진한 초록을 띠면서 오르고 있었다. 절 뒷산으로 조금 올라가 보니, 숲의 바닥도 진한 초록을 띠고 있다. 동서울의 식생이 깨끗하다면, 보림사의 식생은 좀 지저분하다.
  까데기가 있는 곳이다. 사실 까데기는 전라도 사람들이 부르는 것인데, 대부분의 전라도 가옥에서 볼 수 있으며, 가옥의 전후면 혹은 측면으로 달아낸 것이다.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는 지역이라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바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까데기가 없고 차양을 길게 내었다. 큰바람을 막는 시설은 없으나, 산간의 골짜기이기 때문에 산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냉기류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울타리는 산 쪽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어젯밤 마루에 대한 토론이 결론이 안 났기 때문에 마루도 유심히 보았으나, 툇마루 정도이고 대청은 없다. 어느 집에는 안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어느 책에 보니 되창문이라고 한다.  되창문이 왜 있는지는 후에 조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탐진천을 따라서 보성 쪽으로 향하였다. 송정리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보성으로 가던 중,
탐진댐 건설 현장을 만났다.  2001년에는 댐이 완공된다 하니, 다시 그 모습을 볼 수나 있을런 지. 다 지난 간 후에야, 얼마 전에 TV에서 보았던 유치면 어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보성으로 가던 중 문화제로 지정된 가옥이 여러 채 있는 예동 마을(옥암리)에 들렀다. 마루(대청)의 존재 여부를 보기 위한 것이다. 영남의 어느 학자가 쓴 글을 보니, 영남지방에는 대청이 있고, 호남지방에는 없거나 안청과 비슷한 마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학자의 말을 빌리면, 안청은 우리나라의 남동 해안지방에서 닫힌 마루로써, 대청과는 그 기능이 다르다. 우리는 몇 채의 가옥을 둘러보고, 대청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의 논쟁이 벌어졌다. 결론부터 보면, 문이 없는 대청은 없다. 뜻 밖에도 외나로도의 신금리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어느 할머니의 증언), 그것을 마리라고 한다. 그 할머니는 마리는 대청과는 다르며, 대청이 뭐냐고 하였더니, '노는 대'라고 답하였다. 이곳의 마리는 곡물 등을 저장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마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영남지방에는 대청이 있고, 호남지방에는 그것이 없다면, 왜 그럴까? 그 학자는 기후 때문이 아니라고 단언한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기후 때문이다. 바람!  대청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는 없는 지를 보기 위하여 답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 때 가서 대청이 왜 잇고, 없는 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2번 국도로 나왔더니, 지금까지와는 영 딴 판인 도로이다. 말이 국도이지 완전히 고속도로와 다를 바가 없다. 어느 것이 잘하는 지는 모르는데, 나는 학생들에게 그런 도로를 반 환경적인(비인륜적인) 도로라고 이야기하였다. 90년대 초반까지 확장된 국도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이었다면, 요즘 확장된 도로는 사람들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 길이 되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보성 시내를 비껴서 봇재를 향하였다.
  봇재로 가던 중 봉산리에서 기후경관이란 것을 하나 보았다. 냉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배 과수원에 펜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 것은 잘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냉기는 골짜기나 와지에 고이는 것인데, 그 것은 산 사면에 설치하고 있어서, 과연 그 덕을 보고 있을 지 걱정스러웠다. 몇 년 전 냉해 피해를 조사하고 다닐 때, 농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관에서 하라는 것에 거꾸로 해. 그래야 맞거든. 관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가는 농사 망쳐!" 대한다원을 들렀다.  일행이 모두 행복해 하는 것 같다.  진입로에 늘어선 삼나무 숲이라든지,
차밭의 경관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들 연인하고라도 온 착각을 하는 듯 했다.  미안하게도 한 조에게는 빨리 보성에 가서 식당이나 예약하고 있으라 해 놓고, 우리는 봇재다원으로 갔다.  이 곳에서는 녹차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인데도 그냥 마시란다. 어떤 중년의 부부는 그냥 가기가 뭐 했는지, 굳이 지폐를 꺼내 들고 있다.
  보성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를 넘어섰다. 코스 담당자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두 개의 코스 중 하나를 고르라 하기에, 고흥 반도를 택하였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숙소인 이양까지,  그 것도 눈이 쌓인 길을 달려서 가려면 좀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빙판이 되기 전에 가야 하는데. 볼 것 없이 달렸다.  우선 고흥 땅을 밟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고속도로 같은 국도를 달려 조성면에서 855번 지방도를 탓는데, 오른 쪽으로는 모두 간척지인 것 같다.  간척 촌 경관을 보니, 계화도 간척지와 별 다를 바가 없다.  15번 국도를 달려 내나로도를 잇는 연육교에 이르니, 5시를 넘어섰다.  일행과 약속은 가장 빠른 방법으로 숙소로 가기로 했는데,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차는 나로도 땅이나 밟아 보기로 하였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 이왕에 외나로도도 밟아보기로 하였다.  욕심부리기를 참 잘하였다.  그냥 갔으면, 몰랐으니 별 생각은 없겠지만, 누가 이곳 이야기라도 하면 통한의 눈물을 흘릴 뻔 하였다.  나에게는 외나로도의 첫 마을
신금리가 이번 답사의 핵심지역으로 떠올랐다. 날이 어두워 본 것만으로 만족해 하며 숙소로 향하였다.  "야, 우리 이번 겨울에 꼭 다시 오자." "네!"

* 제목이 좀 어설프다.

* 여기의 오늘은 1999년 12월 19일이며, 이 글은 1999년 12월 23일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