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옥과 바람

오늘이야말로 코스 때문에 갈등이다. 오늘은 복흥을 들리기로 한 날이다. 복흥은 내가 가장 추천하는 호남지방의 코스 중 하나이다. 아마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학생들도 꽤나 기대가 큰 모양이다. 그런데, 어제 보았던 신금리가 영 지워지질 않는다. 올 겨울에 오기로는 했지만, 답사할 지역도 많고, 어째 그냥 가면 못 올 것만 같다. 처음으로 코스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오늘은 신금리만 들렸다 가자.' 다행이 별 저항이 없다. 그렇다면, 어제보다 더 명확히 산맥을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그런데, 눈은 더 많이 쌓여 있다. 눈도 녹일 겸 숙소의 정리를 주섬주섬 하고 나서니, 11시가 넘었다. 29번 국도에 나가보니 다닐 만 하였다. 옆에 앉은 코스 담당자가 '최단 거리로 고흥까지 모시겠습니다.' 국도로만 달려 죽자살자 갔는데도 이미 오후 1시가 훨씬 넘었다.
과역면을 지나, 단거리로 가기 위하여 855번 지방도를 탔다. 역시 15번 국도도 반인류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천학리(구천마을)를 지나는데, 오른 쪽의 운람산(486.9m)의 산록에 형성된 완사면을 따라서 넓은
마늘밭이 퍽 인상적이다. 포두면에서 본 길두리의 간척촌은 영락없는 계화도 간척촌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서글퍼졌다. 우리 민족은 누구에게도 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국제선을 이용할 때, 국내 항공사를 이용하면 별 대접이 없다. 그렇다고 외국 항공사의 우리 민족 승무원을 만나면, 역시 반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틀림없이 그 승무원은 우리 때문에 그 비행기 안에 있는 모양인데도. 나는 언젠가 일본 국적의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일본 사람들이 부러웠다. 일본인 승무원들이 그들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 수가 없었다. 그 때 속상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는데, 평화촌, 광활, 계화도 그리고 이곳 길두리의 간척촌을 보니 그 마음이 다를 바가 없다. 어찌되었든 이 간척촌은 보너스로 본 것이니, 불평은 그만하고 열심히 신금리로나 가기로 하였다.
밤새 별 일없이 신금리는 잘 있었다. 한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겁나게 바람이 부는 곳이다.' 그대로 가옥 경관에 반영되었다.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있어서, 더 이상 무엇을 보면 마치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감정이 들통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무진 애를 썼다.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지만,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애이 모르겠다.' 길이 있었지만, 섬의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가다가는 어째 집 구경도 하기 전에 숨이 넘어갈 것만 같다. 계단식으로 잘 단장된 논을 그냥 가로질렀다. '누가 욕이라도 하면 망신인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앞에 보이는
성벽을 향해 수없이 샷터를 눌러 댔다. 이건 이다. 도저히 담을 저렇게 쌓을 수는 없지. 도 보통 성이 아니야.
가옥을 들여다보니, 겹집과 홑집의 중간쯤은 되는 것 같았다.
마당에 서보니 전망이란 것이 없다. 어느 집도 마찬가지이다. 온통 성과 같은 담으로 둘러 쌓여 있다. 고향이 제주도인 나는 그곳만 그런 줄 알았다. 천만에 돌이 있는 섬이면 어디든 그런 모양이다. '할머니 저거는 뭐라 부릅니까?' '마리!' '그럼 대청은 요?' '그건 노는 디지' 아직도 대청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이제 하나 둘 풀리는 것 같다. 대청은 노는 데란다. 경상도에 가서 확인 해보아야 하겠지만, 대청에는 문이 없다. 여기 마리라는 곳에는 문이 있다. 여기서 다른 사람(건축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정리해두자면, 대청은 주로 영남내륙지방의 가옥에 있으며, 열린 마루로 되어 있으며 마당에서 각 방을 연결해주는 공간이고,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나 관혼상제의 의례적인 공간으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남동 해안지방에서 볼 수 있는 안청은 문이 있으며, 곡식을 보관하는 일종의 곡물 창고로서 각방을 연결하거나 가족들이 생활공간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의 마리는 아마도 대청과 안청의 중간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답사를 더 많이 해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신금리에서는 그 외에도 볼 경관이 꽤 있다. 잘 몰라서 글로 쓰기는 어렵지만, 처마 밑에는 다른 데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 있다.  
마늘을 말리는 것이라 하는데, 뭐라 부르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곳은 겨울철이 따뜻하여 마늘 재배가 대단하다.  온통 마늘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겨울철에 마늘을 재배하는 것도 필시 기후 경관일지라. 그리고 지붕의 옥상에는 눈에 띠게 물통이 많다. 왜 있는 지를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도 물리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추자도에 들른 적인 있는데, 집안이 온통 물 받는 시설이다(이승호 홈페이지 사진자료실 참조). 이곳에 물통도 그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확인하지 못한 것들은 이번 겨울 방학 중에 있을 답사를 통하여 반드시 확인할 것이다.  와나로도를 막 빠져 나오는 길에 연도교에서 본 사양도의 토지이용이 대단하다.  이용할 수 있는 땅은 모조리 개간한 것 같다.
  과역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눈에 띄게 기사 식당이 많다. 굳이 이곳의 경관을 이야기하라면, 기사 식당이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보성에서와는 달리 매우 친절하다. 물론 그러니 음식 맛도 일품이다. 답사자에게는 아주 좋은 식당(우리기사식당; 0666-832-2131)이었다. 주인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뭘 급하게 가?, 좀 놀다 가지." 바로 출발하긴 했지만 그리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었다. 기사 식당이 많은 만큼 버스 터미널도 시골치고는 꽤 컸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우리는 순창을 들러서 서울로 가야한다. 순창에 가는 것은 사실은 사적인 문제 때문이다. 가서 볼 것은 많지만, 이제 가면 해도 완전히 떨어진 후이고, 볼 수가 없다. 그러니 한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지금 눈길을 달리고 있다. 고추장 사러. 순창에 들어서면 고추장 가게가 많다. 그 중 나는 육란희 할머니가 하는 도실 고추장 가게로 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편하다. '어 또 왔어.' 하면서 반기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라도 뵙는 듯 하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 가더라도 물을 두드리면 반기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주로 보이는 꼬마하고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아무 불평없이, '어서 와.' 고추장을 사고나서 입맛을 쩝쩝 다시는데, '어떻게 그냥 가냐고, 찬은 없지만 뭘 좀 먹고 가'란다. 그냥 간다 했더니 '서운하면 말해.' 그러더니, 고추장 한 통씩을 더 주신다. 그냥 갖고 가라고. 이러고 보니 꼭 공짜에 눈이 멀어서 자꾸만 찾는 것 같다.
고추장을 챙기고 나니 저녁이 깊었다. 어두운 서울 길은 멀기만 하다. 하필 오는 중에 차도 고장이 나고. 천호동에 내렸을 때는 12시가 다 되었다.

* 이 글의 오늘은 1999년 12월 20일이며, 글을 쓴 것은 12월 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