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눈도 조용히 내리던가?

  나는 고 3으로 올라가기 바로 전 겨울 방학 때, 일가 친척의 도움으로 서울 구경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동네 사람 중에는 '넌 이제 출세했다.'는 말을 할 정도의 아주 깡촌의 촌놈이 서울에 왔으니, 그 놀라움은 어떻게 표현할 수조차도 없었다.  안 그래도 큰 나의 눈이 가히 왕방울이라고나 해야 할지?  그저 모든 게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나를 놀라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눈이었다.  자라난 곳이 제주도라 눈이 없는 곳은 아니다.  어느 날인가 낮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눈이 내린다.  설마 했더니, 집으로 돌아가는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아니! 낮에 내리는 눈도 쌓이다니!'  우리 고향에서는 밤에나 눈이 와야 쌓이지, 낮에부터 내린 것이 쌓이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더욱 놀라게 한 눈 사건이 그로부터 2년쯤 후에 일어났다.  재수를 하느라고 가회동의 어느 하숙집에 있을 때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밖이 아주 환하였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통 흰 세상이다. 전혀 눈이 내리고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몰래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르던 노래 중에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 어쩌구 저쩌구'하는 것이 생각난다. 그 때 '도대체 어떻게 내리는 것이 펄펄 온다는 것인지, 선녀님들이 어떻게 그런 눈을'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초등학교에서 불렀던 노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눈은 아주 조용하게 묘사되었다. 우리 동네 눈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했다.  조용하지 못하고, 좀 소란스러웠다.
  그렇다. 서울의 눈과 제주의 눈은 다르다.  세월이 흐르고, 이곳 저곳 겨울 답사를 하면서, 동네마다 눈 내리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눈을 내리게 하는 기구도 다양하였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눈은 크게 네 가지의 기구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온대성 저기압이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 내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온대성 저기압에는 한냉전선과 온난전선을 동반하고 있어서, 어느 눈이 어느 것 때문에 내리는 지를 분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것으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서울의 눈은 대부분 이런 경우에 내리는 것이다.  보통 저기압이 지나갈 때의 눈은 조용하다.  특히 온난전선이 지나갈 때 더욱 그러하다.  어쩌다 한랭전선이 지나갈 때 내리는 눈은 좀 소란스러울 수도 있다.  아주 심하면, 천둥 번개도 동반한다.  이런 눈은 기온이 그리 낮지 않는 상태에서 내리기 때문에, 주로 중부 지방에서 볼 수 있고,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주 기온이 낮은 경우가 아니면, 비나 진눈깨비가 되고 만다.  그러니 제주도와 같은 곳에서는 이런 경우의 눈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이 눈이 나를 두 번이나 놀라게 한 바로 그 장본인일 것이다.
  공군에 가서 기상장교를 하게 되었는데, 겨울 어느 날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저녁 때 예보를 내면서, 오늘밤은 맑고 바람도 없으니 야간 비행을 하기에 아주 좋을 것이라 해놓고는 할 일도 그리 없는 것 같고, 잠이나 좀 자볼까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날씨 어때요?"
  "내, 아주 좋습니다."
  "아! 좋기는 뭐가 좋아요? 당신 보기나 하고 하는 소리요?"
  "뭔 소린지?"
  "뭐긴, 밖에 보기나 하고 얘기해요."
  군대를 전역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오후에 예보를 낼 때만 하여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멀리 서해 바다는 물론, 중국까지 가보아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 구름이란 것이 갑자기 생기기보다는 멀리 서쪽에서 만들어져서 서서히 편서풍을 타고 오기 때문에, 내가 있던 곳은 예보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밖을 보았더니 말 그대로 하얗다.  야간 비행은 커녕 활주로의 눈을 치우기 위해 비상소집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낭패를 보다니! '  쓸데없이 사병들에게만 호통이다.  "야! 이놈들아, 눈이 오면 온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 후로는 그런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기도를 보았더니, 주변에 저기압이란 것은 없다.  '도대체 왜 내린 것일 까?'  요즘 방송국에서 하는 예보를 들어보면, 똑 같은 시간에 한 사람은 '우리나라의 날씨가 기압골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저기압 때문에 이렇쿵 저렇쿵'한다.  그런데 분명히 그 둘은 다르다(이 이야기는 후에 하기로 하고). 바로 그 눈은 기압골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북으로 고기압이 있어서 중부지방은 그 사이의 골에 위치한 것이다.  낮에는 육지가 가열되어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을 하여 공기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고기압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다.  그런데 밤이 되면서 육지는 더 빨리 냉각되기 때문에 육지에 중심을 두고 있는 두 고기압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골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골이 깊어지니 구름이 만들어지고 눈이 내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전혀 눈치를 챌 수도 없이 내려 버린 것이다.  이런 눈이 중부 지방에 가끔 내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요즘도 이런 경우를 잘 보면 예보가 잘 빗나간다.  가끔 서울에서 보면, 예보에서 전혀 눈이 없었는데, 갑자기 밤 9시쯤 되면 눈이 내리는데 보통 대설주의보가 내려지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은 완전히 자동차와인지 눈과인지도 모르는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 눈이 해가 뜨면 금방 그치고, 오전 열시쯤 되면 구름도 한 점 없이 개인다.  바로 '내가 언제 그랬냐?' 하듯이.  이런 눈은 그야말로 남부지방에는 있을 수 없다.  대부분 중부지방이다.
  앞의 두 경우의 눈은 겨울이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2월도 좋고, 1월도 좋고 아니면 2월도 좋다.  그런가 하면, 때를 가려서 눈이 내리는 곳도 있다.  소위 호남 서해안 지방이라는 곳과 제주도에는 주로 1월에 눈이 내린다.  그것도 아주 추울 때.  정확하게는 시베리아기단이 강하게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할 때.  나는 대학에 다닐 때, 고속버스와 배를 이용하여 귀향한 적이 많다.  서울에서 분명히 목포까지의 충분한 시간을 계산하고 출발하였는데, 목포항에 가보면 배가 없다. 이미 저 다도해를 향해서 뱃고동을 울린 지 오래다. 할 수 없이 당시에 천원 내고 항구 앞에 있는 식당 겸 여인숙인 곳에 들어가서 저녁도 먹고, 잠도 자고, 물론 아침도 먹고 고향으로 가곤 하였다.  여인숙에 들어 가보면, 나만이 아니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꽤 되어 방안에는 할머니에서부터 젊은 총각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다들 나와 같은 경우라 한다.  서울서 출발할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날씨도 좋고, 차가 잘 달린다.  그러던 것이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차가 점점 광주에 가까워지면서 바닥이 하얗게 변한다.  이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선 차는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급기야는 체인을 감는다 어쩐다 하면서 시간을 끌기 시작한다.  이런 눈은 아주 추울 때, 그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바닷물 사이에 만들어진 불연속선 상에 형성된 구름이 육지로 이동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눈은 둘 사이의 온도 차이가 크면 클수록 많은 눈이 내리는데,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강력하다.  어떨 때는 콩알만한 눈이 떨어져 맞으면 아프다.  어렸을 적, 도당 집에 살았던 나는 그 눈이 '와당땅 뚱땅'하고 하도 요란스러워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적지 않다.  제주도는 가운데 한라산이 있기 때문에 한라산을 오르면서 만들어지는 눈알이 그렇게 크다.  해발고도가 400여m에 가까운 제주대학에 있을 때의 일인데, 이건 눈이 아니라 하늘에 눈깔사탕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냥 달려나가서 하나씩 주어들고 구슬치기라도 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구름이 평지를 지나고 공기와 물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을 때는 조용하게 내리기도 하였다.  그것을 군산과 광활에서 보았다.  이 눈들은 모두 북서풍이 강하게 불 때 내리는 것이다.  온도 차이가 작을 때는 양은 많지 않지만, 내리는 경우는 자주 있다.
  이월 중순을 넘겨 서면, 뜻하지 않는 눈을 만났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그것도 대관령과 같은 곳에서.  이 때쯤이면, 왠만한 차들은 월동장구라 하는 것을 집에다 잘 모셔놓고 달린다.  '대충 겨울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 사람들이 동해안으로 봄방학 맞아서 놀러 가다가는 간혹 큰 코를 다친다.  분명히 서울의 날씨는 아주 깨끗하다.  구름 한 점 없을 뿐만 아니라, 남산에 가면 송악산이 보일 정도로 아주 깨끗하다.  그러던 것이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말자 동쪽으로 바닥이 평평한 구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주쯤 가면, 보이는 하늘의 면적이 크게 준다.  둔내를 가면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월정을 가면 눈발이 내리는 것 같더니, 이제 차가 앞으로 가기도 어렵다. 이 때 소위 영동 산간이라 하는 곳은 교통두절, 완전 고립이다.  우리나라가 북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북동풍이 부는데, 이 공기가 좀 차갑다.  이 공기가 동해를 지나면서 바닷물과의 사이에 불연속면이 만들어지고, 그 구름이 태백산맥을 만나 급격히 상승하면서 더욱 발달한다.  그러니 폭설일 수밖에.  가만히 보면, 영동의 눈은 내렸다하면 폭설이다.  눈을 내리고 영서지방으로 넘어온 공기는 건조단열변화를 거치면서 맑고 건조한 날씨를 만든다.  서울은 그런 공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눈들이 동네마다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답사를 하면서 그런 경관들을 하나 하나 찾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울릉도에 가면 우데기란 것이 있고, 전라도에 가면 까데기가 있다.  강릉에도 그 비슷한 것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울릉도의 눈 이야기를 빼놓았다.  울릉도의 눈은 좀 더 특이한 경우인 것 같아, 울릉도 이야기를 할 때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