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다던 울릉도

  나는 그동안 울릉도를 이야기할 때마다 겨울에는 여행할 만한 곳이 못된다고 하였다.  굳이 울릉도의 계절을 이야기하자면, 가을이 가장 좋고, 다음은 여름이나 봄이지 겨울은 영 아니라고 했다.  사실 모두 책을 통하여 얻어들은 것을 마치 알고 있는 양하면서 이야기한 적이 많다.  어떤 자리에서건 울릉도 이야기만 나오면,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저절로 기가 죽었다.  그런 나를 믿고 우리 여덟의 일행이 며칠째 울릉도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우리는 울릉도의 겨울을 보러 가는 것이다.  지난 봄의 울릉도를 본 적은 있지만, 과연 눈이 많다고 하는 울릉도의 겨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이번 4박 5일(일행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 정도 배가 묶였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을 통하여 아예 울릉도의 겨울을 완전히 삼켜버릴 작정이다.
  어제 서울을 벗어나면서, 날씨 때문에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제부터 시베리아 기단이 확장하기 시작했으니, 울릉도 바다에 바람이 많을 것은 당연한 것 같고, 그럼 배는? 지난 봄 울릉도로 들어가던 날이 생각난다.  항구에서 만난 학생들이 나를 별로 아는 척도 안하고, 바다는 울렁이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꼭 저 배를 타야 하나?' 했던 기억이다.  물론 일부 일행과는 배가 못 뜨는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는 하였다.  하다 못해 호랑이 꼬리라도 만지면서 하루를 지내기로 한 바 있다.  그렇지만 겨울 울릉도에 대한 기대로 단 1분이라도 빨리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희망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니, 울릉도에 1-5cm의 눈이 내릴 것이란다.  우리는 바로 그 눈을 보러 가는 것이라 기대가 더욱 크다.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어 못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친 것에 비해 너무 희망적인 소식이다.
  열시가 되니, 우리를 태운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봄에 이 배를 탔을 때는 설레임 때문에 이쪽 창도 보고 저쪽 창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파고가 1-3m가 된다하니, 모두 긴장이다.  창 밖을 보기는커녕 빨리 잠에 빠지는 것이 수이다.  어젯밤에 열심히 자 둔 것이 마구 후회가 된다.  한 시간쯤을 버틴 것 같은데,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고, 완전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빠지고 있다.  옆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는 친구가 부럽다.  아마도 우리가 타고 있는 배 안에서 가장 조용한 화장실에서 한 시간은 버틴 것 같다.  '비행기로 울릉도에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다시는 안 간다'를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배에서 내려서 보니, 그 생각이 혼자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은 '울릉도 길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케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견딜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겠다.' 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더니 좀 나아진 것 같다.  
  세시간 반 정도를 파도와 싸워 이긴 우리가 울릉도에 도착했을 때, 일행들은 완전한 패잔병이다.  그렇지만 하이얀 울릉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우리는 단 1초라도 빨리 울릉도를 보고 싶었다.  아침 예보에서의 눈에 대한 기대로.  그러나 울릉도는 까맣다.  정신이 없어서인지, 어디도 하얀 것은 없다.  먼 산봉우리는 좀 하얀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봄, 처음으로 울릉도를 밟았을 때의 흥분도 없다.  하얀 눈 대신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릴 반긴다.  다른 섬에서도 배를 내리면 이러는 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배 시간에 맞춰서 뛰어 나온다.  '숙소를 안 정했으면 우리 집으로 갑시다'  모두 공통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정한 숙소는 민박집이었는데, 아주 깨끗한 여관 같은 곳이다.  전통가옥을 개조한 정도의 민박을 기대했는데, 전혀 다르다.  숙박지로는 최고였으나, 우리의 입맛에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관광 회사를 통해서 예약을 해 놓은 거라 일단 짐을 풀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운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정신도 차린 것 같고, 답사를 시작하였다.  울릉도를 인상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도로이다.  그 중에서도 도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8자 도로가 최고란 생각이다.  내일 성인봉을 오르려면, 울릉도에 적응을 해야 할 것 같고, 사동까지 걷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그 8자 도로를 만나게 된다.  하도 경사가 급하여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8자 도로를 만든 것이다.  철도에는 이런 것을 뤂식 터널(또아리굴)이라고 하던데, 여기서도 뤂식 도로라고 해야 할지.  터널 대신 교량으로 만들었다는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8자 도로 주변에서는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섬 잣나무가 우릴 반길 뿐, 눈은 없다.  눈을 마구 뒤집고 찾으려 애를 썼더니, 음지에 몇 일쯤 묵어 보이는 것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다.
  기상대가 있는 망향봉(316m) 능선에서 가두봉(194m) 능선까지가 사동리이다.  이 넓은 마을 중에서 오늘 우리의 관심은 일명 와록사라고 부르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곳에는 기후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천연기념물 237호인 흑비둘기 서식지가 있다.  울릉도에는 천연기념물이 많다.  이 조그마한 섬에 일곱 개의 천연기념물이 있으니, 그 것만을 답사하는 것도 퍽 의미 있을 것이다.  울릉도에 서식하는 흑비둘기는 후박나무를 쫒아 다니기 때문에, 열매가 열리는 7, 8월에나 볼 수 있다.  이제는 주변이 시끄러워 지면서 제철에도 그리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동에는 이곳말고도 곳곳에서 후박나무 군락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찾았을 때는 무식하여 어느 것이 후박나무인지, 일단 비슷한 것은 다 찍어 놓던 기억이다.  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굴거리 나무를 후박나무라 하여 학생들에게 열심히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마구 찍었다.  그리고는 이곳에 와서 보니 전혀 다른 나무이다.  그 후로 터득한 바에 의하면, 그 두 나무는 전혀 다르다.  우선 잎이 다른데, 굴거리 나무는 잎도 길쭉하면서 넓고 색이 좀 노란 빛에 가깝고, 후박나무는 잎이 훨씬 작고 색이 진하다.  또한 멀리서 보면 후박나무는 여러 개의 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후박나무는 한 겨울 답지 않게 진한 초록을 띠고 있다.  이 나무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겨울이 온난한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도 자라고 있으니, 울릉도의 겨울이 상당히 온난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니 남쪽의 사면에 자리한 이 마을에 눈이 있을 리 없다.
  후박나무를 빠져 나와 가두봉 쪽을 보니, 파도를 막는 벽이 인상적이다.  가두봉까지 해안선을 따라서 도로가 발달하여 있는데, 가옥이 있는 곳에만 높은 벽(1m 정도)을 설치하였다.  가옥 안으로 파도가 들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도로의 높이도 2, 3m는 되어 보였는데, 벽을 막아 놓은 것을 보니, 울릉도의 3고 중의 하나가 파고라는 것이 실감 났다.  바로 앞을 보니, 오징어를 말리는 덕장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비가 내릴 것 같아, 오징어 위에 도당(함석)을 한 장씩 덮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놓고 끈으로 꽁꽁 묶어 놓았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아저씨가 말하길, '울릉도 오징어에는 비타민 씨가 많은데, 비를 맞으면 그것이 다 씻겨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징어 떼가 우산을 쓰고 있는 샘이다.  이런 정도이면 오징어 말리는 정성이 대단한 것이다.  저동에서 본 오징어 건조장은 상당히 현대화되었다.
  이제 가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것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만약 눈이 많은 고장이라면, 저보다는 경사가 급하겠지?'  이곳의 가옥은 보통 방이 두 개 나란히 있고, 이어서 부엌이 있다.  그 앞으로는 쭉담이 있는데, 대부분 마루를 놓았다.  바로 이 쭉담 밖으로 과거에는 우데기라는 것을 설치하여 바람을 막았고, 요즘은 대부분 유리문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이것을 이곳의 한 어른은 가라스문이라 한다.  서울 같으면 추워서 못 견딜 것 같다.  저 문을 왜 달았냐고 물었더니, 즉시 '바람 막으려고.'  역시 바람이 강한가 보다.  기온이 높기 때문에 바람만 막으면 아늑하다.  우리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눈도 중요하지만, 바람을 잘 보아야 하겠다고.  겨울의 강한 북서 계절풍이 어떻게 이 곳을 눌러 왔는지, 그것을 잘 보아야 할 것 같다.
  도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상대 옥상에 올라보니, 왜 태하에 있던 군청이 도동으로 왔는지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눈이 문제였다면, 태하나 도동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을 텐데.  역시 문제는 바람이다.  아무런 시설이 없이도 바람으로부터 막혀있고, 풍랑으로부터도 막혀있는 곳, 그곳이 바로 도동이다.  도동이란 명성에 비해 그곳에는 변변한 방파제 시설조차 제대로 없다.  그래도 되는 곳이 도동이다.  육지 사람들이 울릉도 주변을 헤매이다 아늑한 곳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동이다.  당시에 눈은 얼마나 왔을 지 모르지만 겨울의 찬 북서풍에 막혀 있는 곳이다.  일행은 내일부터의 일정은 눈과 바람에 초점을 두기로 하는데 쉽게 합의하였다.  바람에 조금 더....
  나는 여기서 울릉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울릉관광의 임영광씨를 꼭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그 사람은 울릉도를 아낄 뿐만 아니라, 보여 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지난 봄에도 적지 않은 덕을 보았지만, 이번 답사에서는 누가 인솔자인지를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  말만 잘하면, 승합차도 아주 저렴하게, 그리고 어디든 차가 갈 수 있는 곳이면 다 갈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