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천부)으로 가는 길

  '내가 다시 성인봉을 오르면 성을 간다'고 하던 것이 지난 봄의 일이다.  지금까지 답사를 하면서 어느 한 번도 뒤 처져 본 적이 없었다.  주로 학생들이 못 쫓아가겠노라고 아우성을 치곤 한 것 같은 데, 처음으로 '난 이제 더 이상 못 간다.  너희들이나 잘 갔다 오 거라'하고는 주저앉았다.  성인봉 정상(984m)을 불과 몇 십m 남겨 놓고의 일이다.  이제 성을 갈게 생겼다.  오늘 다시 성인봉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지난 봄의 성인봉을 오르는 이유는 나리분지로 가기 위함이며, 또한 성인봉에서 알봉과 칼데라 분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거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성인봉 남북 사면간의 식생의 차이를 보는 것이다.  식생은 기후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경관이다.  우리나라 정도의 규모에서는 여름철보다 겨울철의 식생 경관 차이가 더욱 뚜렷한 것 같다.  바로 이 식생을 보는 것도 이번 답사의 중요한 목표이다.
  등반로는 안평전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였다.  지난 봄에는 대현사 앞에서 시작되어 삼각봉(518m)을 지나는 코스를 택하였다.  두 코스는 관모봉을 지나서 만나는데, 대현사로 가는 길이 좀 길다.  안평전을 택하면, 사동 쪽을 잘 볼 수 있고, 대현사 쪽을 택하면 봉래 폭포 쪽과 저동을 잘 볼 수 있다.  안평전으로 가는 길은 험한 것이 아니라 공포의 길이 었다.  그런 와 중에도 임영광씨는 한 손을 놓으면서 이 산 저 산을 설명한다.  그 때마다 나는 가슴이 콩알 만 한 정도가 아니라 깨알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올해 초에 울릉군수가 이 길을 똑 같이 갔다 하니, '나도 살아 돌아오겠구나'하는 생각과 이 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사실이 그나마 마음을 놓이게 했다.  가는 길과는 달리 안평전에 오르니 말 그대로 안평전이다.  이런 산 속에 이렇게 평평한 땅이 있다니!  이 곳도 다른 여느 곳과 같이 주로 나물(특히 참고비가 눈에 띠었다)을 재배하고 있다.  이제 해안가의 저지대에서 보이던 후박나무나 동백나무는 보기 어렵다.
   안평전에서 처음 반기는 것은 관모봉(686m) 기슭에 자리한 초라해 보이는 가옥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가옥임에 틀림없다.  가옥은 산을 등지고 있는데, 뒤로 대나무로 만든 우딸이 있다.  아마도 밤에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냉기류를 막으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사동에서 보았던 가옥과 비슷한 형태인데, 부엌을 지나서 방이 하나 더 있다.  역시 쭉담 앞의 문도 가라스문이다.  일행 중 누군가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럼 옛날 우데기가 이렇게 좁은 것이었어요?"  그가 졸업한 학교의 지리 선생은 꽤나 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었다 하던데.  뭔가 잘 못 된 것 같다.  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데기를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벽이 우데기인지, 공간이 우데기인지를 잘 못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데기를 공간이라고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이 대단히 넓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리를 가르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데, 어디선가 돼지우리 냄새가 진동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변에는 없다.  산을 오르다 보니, 숲으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우리가 있다.  그러니 꽤 늦은 시간인데도 산풍이 불어 내려오는 모양이다.  숲 속으로 들어서니, 이게 답사인지 등반대회인지 구분이 안 된다.  직선 거리로 500m도 채 안 되는 것 같은데, 고도 차이가 300m를 넘고 있으니, 답사가 될 리 없다.  그저 분명한 것은 해발 400m정도를 넘어서는 바닥에 눈이 있고, 그것이 점점 깊어져 간다는 사실, 그리고 눈 아래는 뭔가 초록빛이 있다는 것이다.  10분을 기어오르기가 어렵다.  정상이 다 왔다고 앞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가는데, 해발 600m 정도에 이르니, 지난 번 성인봉에서 보지 못하여 안타까워했던 만병초 군락이 나타났다.  잎이 모두 오그라 들은 것이 특징인데, 아마도 음지라서 그런 모양이다.  만병초 군락을 보았으니 드디어 성을 갈면서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만병초는 고산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정도의 고도가 그 경계쯤은 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쉽게 보이던 송악 줄기도 급격히 줄었다.  아니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송악 줄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물도 많은 데서 볼 수 있는 모양이다.  650m정도의 관모봉 능선에 오르니, 식생이 다시 바뀐다.  초록의 조릿대가 나타나고, 그 위로는 섬단풍나무, 우산 고로쇠 등 고산식물들이 대부분이다.  나무 가지들이 남서풍의 영향으로 편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바람이 꽤나 강한 것 같다.  만병초가 자주 눈에 띠는데, 조금 전과는 달리 잎이 활짝 펼쳐져 있다.  이 정도의 고도에는 확실히 눈이 많은 모양이다.  눈의 압력을 못 이겨 편형된 우산 고로쇠도 적지 않게 눈에 띤다.  지난 봄에는 왜 안 보였는지, 성인봉 정상까지도 만명초 군락은 계속 이어진다.  양지쪽의 것은 키도 꽤나 커 보인다.
  몇 번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드디어 성인봉이 바로 앞이다.  쌓여 있는 눈의 높이가 쉼터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릎 정도는 족히 될 것 같다.  성인봉을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이 때를 대비하여 힘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바로 '난 더 이상은 못 간다'던 그 지점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경사도 급해지고, 힘도 다 소진했고 웬만한 사람이면, 그 소리가 나올 것이다.  다리는 천근만근인 것 같지만, 북쪽 사면을 본다는 생각에 다리가 움직이기는 움직인다.  우산고로쇠나 섬단풍나무도 훨씬 두꺼워졌다.  막상 성인봉을 앞에 두고 보니 조릿대뿐이다.  정상에 올라보니 주로 이름 모를 키가 작은 나무뿐이다.  안평전에서 세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그래도 칼데라 분지에 눈이 깔려 있어 이중 화산인 알봉이 더욱 뚜렷한 것을 보니 올라온 보람이 든다.  알봉은 칼데라 분지가 만들어진 후에 분출하여 형성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담배를 피지 않고 내려가면 뭐가 어떻게 된다하여 짜릿한 한 모금 피우고 나니, 올라올 때의 땀 줄기는 다 어디로 가고, 한기가 스며든다.  담배를 피고 난 후의 울릉도 호박엿의 맛은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상의 조릿대를 붙잡고 겨우 내려 왔는데, 앞길이 캄캄하다.  이제는 조릿대도 없고 바닥이 깨끗하다.  지난 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때는 북쪽 사면의 식생이 더 복잡하다는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모두 겨울을 넘기기 어려운 것들이었나 보다.  그 복잡하던 것들이 누가 이렇게 정리를 해 놓았는지? 아주 깨끗하다.  '바로 이것이 남사면과 북사면의 차인가 보구나.'  그러고 보니 오히려 염려와는 달리 내려가기가 쉬웠다.  미끄럼을 타면 된다.  확실히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누가 나무 캐러 올라 왔었는지 설피 자국도 눈에 띤다.  지금 우리는 천연기념물 52호인 성인봉 원시림지대를 통과하고 있는 모양이다.  해발 500m 정도부터는 다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식생도 다양하다.  주목도 보이고, 울릉도에 만 자생한다는 솔송나무도 가끔 눈에 띤다.  등반로가 얼마나 험한지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굴러 죽을 고비를 넘겼고, 답사가 전혀 안된다.  완벽한 등반대회가 되 버렸다.  그저 '무사히 살아서 나리분지나 볼 수 있을 까?'
  신령수의 물은 아직도 여전하다.  한 모금을 넘겼더니, 이게 신령인가 보다.  주변에는 아직도 우산고로쇠, 섬단풍나무 등이 둘러싸고 있고, 이 곳을 빠져나가니 소나무, 섬잣나무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알봉분지에는 아직도 외로운 투막집 두 채가 지키고 있다.  지난 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이 투막집이 어느 정도 사실적인 지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지붕이 경사가 너무 급하다. 대략 30도가 넘어 보인다.  그렇다면 눈도 많지 않고, 바람이 강한데 견디어 낼 수 있을 까?  이런 의문은 며칠 후 운릉문화원을 찾았을 때 해결되었다.  언제 인지 모르는 시기에 나리분지에 눈이 덮여 있는데, 지붕이 겨우 보일 듯 말 듯 한다.  '아! 이래서 지붕 경사를 급하게 해 놓았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도를 보면, 과거에는 알봉에도 꽤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빈집뿐이다.  알봉에서는 보너스로 부석을 볼 수 있다.  투막집 사진을 찍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다 보면, 밝히는 것이 모두 부석이다.  이 부석은 거의 나리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된다.  사실은 신령수를 넘어서부터는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에는 눈이 덮여 있어서 찾기 어려웠다.  제주도(온평리)에서 보았던 것은 누런 색이었는데, 이곳의 것은 백두산에서 보았던 것처럼 밝은 색이다.
  알봉에서 100m쯤 나리 쪽으로 가면 왼쪽에 섬백리향 군락이 있는데, 눈으로 덮여 있어서 위치만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북사면 해발 600∼700m의 양지 바른 곳에 서식하며, 잎과 6월 말에 피는 꽃에서 밤의 향기가 좋다한다.  이곳을 지나니 눈의 압력을 못 이겨서 쓰러진 소나무, 섬잣나무, 동백나무 등이 뚜렷하게 눈에 띤다.  나리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볼성사나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어느 군 기관에서 의뢰한 공사라는데, 나리 분지를 망쳐 놓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찌 되었든, 그 산 속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을 줄이야!  성인봉에서도 보이지 않던 넓은 평지이다.  온통 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과거에는 천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잎과 향이 인삼과 비슷한 삼나물, 참고비 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눈에 띠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투막집 보다 우딸이 설치된 사람 사는 집이다.  왜 우딸을 했냐고 물었더니, 역시 바람 때문이란다.  나는 지난 봄에도 홍문동 쪽으로 나리분지를 빠져나갔지만, 이번에도 그 쪽을 택했다.  홍문동 입구에서 본 나리 분지야말로 절경이다.  나중에 합류한 한 일행은 혼자 그 모습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더란다.  홍문동으로 가는 길에 너와집을 볼 수 있다.  지난 봄에 손질을 가했다.  잘 못 손질을 가한 것 같다.  용마루를 더 높여 놓았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기는 바람이 많은 곳이니, 저러면 다 날려 버릴 텐데.  신리의 너와집과는 달리 너와 위에 수많은 돌을 얹어 놓았다.  아마도 바람에 너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지난 봄과는 달라진 것이 많다.  도로도 훨씬 넓어져 가고 있다.  필경 나리 분지가 박살 나버릴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홍문동으로 가는 고개는 역시 오르기 힘들다.  칼데라 분지의 벽이니 급경사일 수밖에.  직선거리가 20m가 채 안 되는 것 같은데, 고도차이는 40m에 이른다.  여기서 홍문동까지의 경사도 만만치 않다. 500m 정도의 거리에 고도 차이가 120m에 이른다.  홍문동에서부터는 길이 좁은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천부까지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홍문동에는 우딸이 없다.  산의 이름은 모르지만, 송곳봉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북서풍을 막아 주고 있다.  다음날 혼자 이 길을 올라간 일행이 전하길,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이 홍문동에 이르니 잠잠하다'라는 것이다.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마을이다.  앞의 그 산으로 삭도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깍끼등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급경사인데다 겨울에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오르기 어려워서 설치한 것일 거다.  요즘에는 재배한 나물을 이동하는데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천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집은 모두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울릉도의 가옥구조와 재료가 어떻게 변해 가는 가를 이곳과 죽암을 들러보고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천부에 들어서서 두 번째의 집에서 묵을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험한 산을 넘으면서도 침낭을 하나씩 챙겨 들었다.  갖출 것을 다 갖춘 집이라 하면 옳은 표현일지.  집은 우데기 집을 그대로 가라스문으로 만 변형시켜 놓았고, 그래도 부족하여 옆으로는 옥수숫대를 이용하여 우딸을 만들어 놓았다.  지나 봄에도 한참을 둘러보았고, 이번에도 그래도 지겹지 않은 집.  허리를 편찮아 하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보여주는 집.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할머니가 바람 종류도 많이 알고 계셨다.  말도 빠르다.  이게 다 지역성을 반영하는 것 같다.  사실은 주변의 집이 다 그렇다.  
  마음 같아서는 천부와 죽암을 오늘 다 뒤지고 싶은데, 일행들이 힘든 것 같다.  물론 내 다리도 내 것인지 누구 것인지 알 수 없을 같다.  우리는 옛날의 가옥을 개조해서 하숙을 하고 있는 집을 구하였다.  그 가라스문의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엔 바람이라도 많이 불어주면 좋을 것 같다.

* 울릉도에서는 울타리를 우딸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오늘은 2000년 1월 9일이며, 이글은 그로부터 열흘 후에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