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은 북면

  그렇다.  북면은 바람이 많은 것이 분명하다.  우린 오늘 북면을 돌아다니다, 섬목에서 배를 타고 도동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혹시 배가 안 다닐 것에 대비하여, 북면에서 태하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인 태하버스 아주머니에게 부탁은 해 놓았다.  섬목에 배가 뜨지 않으면 북면의 대중교통은 없다.  새벽에 잠을 깨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기대하던 그 바람이 불고 있다.  집이 날아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정도의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데, 신기하다.  방안은 아늑하다.  가라스문의 역할이 저리 대단한 것인가?  문 밖을 나가보니 바람이 우리 고향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늘은 배가 못 뜨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배가 안뜰 경우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여유를 부렸다.  태하버스에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 지금 오실 수 있어요?"
 "지금 안 되는데요."
 "왜요?"
 "30분 후에 섬목으로 가야해요."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섬목은 왜요?"
 "바람은 무슨 바람요, 이런 바람이야 매일이지."
 사태가 심각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우리는 아침 첫 버스를 타야 했다.  할 수 없이 걷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 곳이 울릉도의 북면이다.  죽암으로 가기로 했다.  지난 봄 답사 때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지난 봄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왔는데, 이틀이나 배가 묶였다.  정해진 일정 중에 죽암을 두 번인가 지나기는 했는데 별 본 것이 없었다.  무료함을 달랠 겸, 숙소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선동하여 죽암으로 가기로 했다.  "단, 일정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여행이다.  그러니 죽암을 가되, 마음대로 하거라."  20여명의 학생이 동참하였다.  저동에서 섬목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일부는 죽도에 내리고 대부분 죽암에 가기로 했는데, 울릉도의 동쪽 해안이 절경이라고 탄성이다.  11인승 승합차인데도 우리 일행은 다 탈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손님도 꽤 있었다.  아마도 울릉도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암을 다시 못 보고, 육지로 갔으면, 어찌되었을까?  아마 이번 겨울 답사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죽암의 마을 회관 앞에서 차를 내리는 순간 거의 기절할 뻔하였다.  '저것을 찍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그것을 찍을 수 없었다.  온 몸이 떨려서 카메라를 들을 수도 없었다.  학생 한 명하고 그냥 마을을 걸었다.  가슴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을 끝까지 걷고서 담배를 한 개피 피우고 마음을 가라 앉혔다.  '왜, 그동안은 이게 안보였을 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지나간 이 울릉도를 난들 무얼 더 보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배가 묶인 것은 나로서는 퍽 다행이었다.  
  작은 골짜기 입구에 조그만 집 한 채, 그리고 그 뒤로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거의 환상적이다.  나무는 북서에서 남동으로 완전히 편형되어 있고, 집은 울타리로 완벽하게 둘러 쌓여 있다.  '그래, 나는 이 것을 보려고 하루 더 남은 거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두 똑같다.  모두 대나무 울타리를 치고 있다.  마침, 언덕 위의 어느 집에 한 할머니께, "저게 뭐예요?" 하고 물었더니, 아주 강렬하면서도 짧게 "우딸!" "뭐라구요?" "우딸."  이것이 다 바람 때문이다.  겨울철의 강한 북서풍을 막으려고 해놓은 것이다.  우딸 안으로 들어가니 아늑하기 그지없다.  그 나무도 북서풍 때문에 편형된 편형수이다.  할머니가 '우딸'이라 하는 것도 바람 때문이다.  바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이 빠르고 짧고, 소리가 크다.  말이 길면 바람 소리 때문에 전달이 어렵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적응해 온 것이다. 언덕을 내려가 다시 마을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보아야 마을이 잘 보일지, 이리 저리 뛰어 다녀 보았다.  나무는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편형되어 있고, 장독 위에는 돌이 얹어져 있다.  물론 바람 때문에.  온갖 멀미를 해 가면서 찾아온 울릉도.  이제 하나를 본 것 같다.
  오늘 죽암에서도 좀 아는 척하면서 지난 봄과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모두 감탄인 것 같다.  사실은 억지로라도 감탄하라고 시킬 작정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도 무감각하다면, 답사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몰아갈 생각이었다.  지난 번 답사에서는 이 곳 죽암과 천부에서만 우딸을 보았다.  오늘은 다른 곳에도 있는가를 보는 것이 답사의 중요한 목표이다.  한 시간정도를 걸었더니, 용천교이다.  용천교를 바로 지나면, 추산 수력발전소가 있다.  아마도 섬에 수력발전소가 있는 곳은 이 곳이 유일할 것이다.  1966년부터 발전을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제 2발전소까지 포함하여 1,400KW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화력발전 용량이 점차 커지면서 그 중요성은 작아지고 있다.  추산리 길을 따라 30분 정도 나리 쪽으로 올라가면 제 2발전소를 볼 수 있고, 다시 30분 정도를 올라가면 발전의 근원인 용출소가 있다.  지하에서 물이 용출하고 있는데,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거운 돌을 용출하는 곳으로 던져도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르는 길에 옛길을 쫓아 가보면, 온갖 산나물을 볼 수 있다.  구황기에 울릉도를 먹여 살렸다하는 명이나물, 찬 물가에서 자라는 와사비 등등.  둘 다 맛이 독특하여 답사 중에 먹어봄직도 하다.  내려오는 길에, 울릉도의 가정에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수도가 있다 하는데, 개인이 설치한 가정용 수도 파이프를 볼 수 있다.  이곳도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가옥의 북쪽으로는 방풍림, 우딸 등의 방풍시설을 눈에 띠게 설치하였고, 나물을 말리기 위한 시설도 쉽게 눈에 띠는 경관이다.  추산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해식애가 잘 발달하였는데, 울릉도가 한번의 화산활동이 아닌 여러 차례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송곳산(300m)을 지나는데, 걷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이 분다.  울릉도 사람들이 이런 바람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니, 신기하다는 생각 마저 든다.  잠사 오른 쪽으로 눈을 돌리니 주상절리가 이리 저리 엉켜붙어 있는 코끼리처럼 생긴 구영바위(孔岩)가 있다.  현포령을 내려오면서 보면 새끼 코끼리가 어미를 쫓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운이 좋아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현포 입구에 내렸다.  현포는 경사만 본다면, 나리분지를 제외하고는 농사짓기 가장 수월한 곳으로 보인다.  육지에서 보는 산록완사면처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것말고도 19기의 고분군이 분포한다.  발굴하기 이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르고 평평한 고분군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나물을 말리는 터로도 사용하였다 한다.  현포령을 오르는데, 재만동의 우딸이 인상적이다.  모두 옥수숫대를 이용하였다.  대나무로 한 것보다 더 높아서 가옥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포령에는 바람이 강한 것을 잘 보여주는 풍력 발전기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용량이 450KW정도 된다 한다. 사실상 현포령을 넘어서면 울릉도의 북쪽은 다 보았다.  여기까지 이르면, 울릉도의 바람과 관련된 경관은 거의 본 샘이다.  또한 울릉도의 가옥이 개척시대 이후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쯤에서 정리해보면, 처음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주변 산지에 자라고 있는 새라는 것을 구해서 지붕과 벽(우데기)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거의 매년 그것을 가는 것이 힘들어, 주변 산에 자라고 있는 송판으로 벽을 바꾸었다.  다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지붕과 벽이 도당(함석)으로 바뀌었다.  벽을 송판이나 도당으로 바꾼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요즘에는 시멘트가 들어오면서 그것과 벽돌을 사용한 가옥도 많이 눈에 띠는데 특히 울릉도의 남쪽에 많다.  어딜 가던지 도당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볍고 열을 잘 전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육지에서 운반해야 하니, 우선 가벼운 것이어야 할 것이고, 지붕에 눈이 쌓이더라도 쉽게 집안의 열이 전달되어 빨리 녹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포령을 넘어서면 아찔한 열두 구비길이다.  태하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에 학포로 가는 길을 뚤러 놓은 태하 터널이 보인다.  저것이 올해 안에 완공되는 일주도로인 모양이다.  10월에 일주도로가 완공된다 하는데, 울릉도의 앞날도 이제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같아서는 일주도로 만들지 말고 각오하고 볼 사람만 보라고 하고 싶은데, 문명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니어서.  태하 삼거리까지 직선거리 500m정도인데, 고도 차이가 250m는 되는 것 같다.  여기서 나리에 산다는 총각이 운전하는 트럭을 운 좋게 만났는데, 다시 가슴이 콩알만 해오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아랑곳없이 운전 솜씨를 뽐 내기도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파악을 했는지, 왕년에 눈오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약간은 뻥을 섞었음이 분명하다.  태하령을 넘어 본 사람이면, 이상한 것이 하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분명히 태하는 북면(천부)으로 가는 길이 훨씬 쉬워 보이는데, 그 어려운 태하령을 넘어서 서면에 붙었는지.  천부로 가는 길은 현포령만 넘으면 된다.  물론 서면(남양)으로 가는 길도 태하령만 넘으면 되지만, 이 두 고개는 비교가 안된다.  
  태하에 가면 볼 것이 너무도 많다.  아마 하루 종일 태하만 둘러보아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가옥 이야기를 가능한 자제하려고 해도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삼거리까지 내려오니, 상당히 평평하다.  지도에 논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과 어울리게 계단 모양의 논처럼 단장을 해 놓았다.  물론 지금은 모두 밭이고, 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지형은 단구인 것 같다.  주변에 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게 가옥에도 반영되었다.  지금까지의 우딸은 대나무, 옥수숫대, 송판 등을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돌담이다.  조그만 성처럼 두껍고 높게 쌓았다.  제주도의 돌담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 것이 좀 엉성해 보인다면, 이곳의 것은 거의 완벽하다.  아마도 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는 거친 현무암이고, 여기는 매끄럽게 깍기기도한 조면암 혹은 안산암이다.  그러니 제주도의 돌들은 서로 미끄러지지 않고 엉성하게 보여도 잘 붙어 있지만, 여기 것은 그렇지 못하다.  아마 그래서 여러 겹으로 두껍게 쌓은 모양이다.
  태하에는 성하신당이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매년 음력 2월 그믐 날 모여 제사를 지내며 한 해 동안의 농사와 바다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여기에는 전설(http://myhome.shinbiro.com/~shkimhp/urd/urd_f.htm)이 있다.  여기서 선착장으로 10분쯤 걸어가면, 대풍감을 오르는 계단이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 제 1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향목에서의 경치를 보기 위한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이래 봐야 20분 정도를 걸으면 그만인데, 나는 두시간을 걷는다 해도 아낌없이 걸을 것이다.  며칠 째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향목에서의 경치는 보아야 한다.  등대가 있어서, 길이 잘 나있고, 등대를 지나면 헬기장이 있는 초원이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나는 정신을 차리느라고 시간을 끌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아야지 그렇지 않고 보았다가는 아마 비경 속으로 빨려들고 말 것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당연히 천연기념물 49호인 대풍감의 향나무 자생지이다.  파란 바다와 하늘에 어우러지는 회색 대풍감의 향나무의 아름다움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일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지난 봄에 보았던 그 광경을 지울 수 없다.  여기서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하늘을 뚫을 듯이 서 있는 송곳산. 바로 이 경관이 우리나라 제 1경이리라.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절대로 남쪽으로는 보지 말아야 하는데, 앉으면 당연히 남쪽으로 보게 된다.  뭔지 알기는 알지만 등대하고 나 사이에 무슨 관측소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환경부에서 대기질을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기상관측장비이다.  사실은 두 개가 중복되는 것이 많다.  둘 다 기상관측을 하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 지는 모르겠다.  한 곳에서만 해도 충분할 텐데.  나라가 왜 망했었는지 짐작이 간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어울리지 않는데, 두 개씩이나!  아무리 보고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사람들이야.  결국 좋은 기분을 좀 깎아 먹은 채 향목을 내려 왔다.
  내려오는 길에 이 지구상 울릉도에서 밖에는 볼 수 없는 울릉 국화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주로 울릉도 해안 가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잎이 두껍고, 보송보송 털이 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드시 만져보아야 알 수 있다.  아마도 바위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선창가로 가면, 황토굴이 있다.  옛날에 울릉도에 순시를 보내면, 울릉도까지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울릉도에 갔던 증거물로 황토를 가지고 가야 했단다.  여기서 대풍령으로 가는 길에 환경에 적응한 스테인레스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대풍령의 쪼끄만 능선에 올라서야 울릉도의 바람 맛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키가 큰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바람에 적응할 수 있는 바닥에 납작 업드린 것 밖에 없다.  
  태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버스터미널이 있다.  이용하는 차도 11인승 승합차 한 대.  운전사도 한 사람.  별 것은 없다.  단지 여기가 버스 타는 곳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버스 시간표 밖에.  여기서 떠나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승객은 우리 일행과 세 사람.  가만 보니, 운전사는 우리 때문에 땡잡았다는 표정이다.  버스 시간표는 섬목에서 떠나는 배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변변한 대합실도 없는 항구.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는 배.  우린 그런 배를 탔다.  잠에서 깨어보니 저동 항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