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배가 올까?

  어제 밤부터 일행의 관심은 일기예보에 모아졌다.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기상대부터 전화이다.  그러나 절망적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몇은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울릉도 땅을 밟았으니, 한 일주일쯤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적지 않다.  어제 밤에는 오늘 일정을 놓고 장시간 토론을 버렸는데, 결말이 나지 않았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생각하는 쪽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갈리어버렸다.  한편으로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보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그렇다, 문제는 볼 것이 너무 많다.  보아야할 많은 것 중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것이 울릉도 문화에 관한 것이다.
  우선, 울릉 문화원을 들렀다.  아무래도 많은 자료도 있을 터이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막상 들러보니, 아주 썰렁한 곳이었다.  대부분이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더라도, 좀 너무한 곳이다.  문화원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무식한 소관으로는 울릉도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나서서 홍보도 해야할 판인데,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 얼마나 반가울까?'하는 것이 소박한 우리의 생각이었다.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에게는 별 관심도 없고, 자기들끼리의 대화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뭘 물어도 아는 게 없다.  그럼 누구를 소개시켜 달라하여도 그것 역시 모른다.  그럴 것이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지?  '필시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나라를 망치고 있지.'  얼마 전, 강화군 문화원에 전화를 걸어서 큰 것을 얻었던 기억이 더욱 새로웠다.  어느 향노를 소개하였는데,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다.  문화란 것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문화가 아닌가?  그런데, 문화원이라 하는 곳에서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고, 무슨 행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또 이상한 것은 아마도 문화원 직원이 그들이 홍보하는 자리에서 우릴 만났더라면, 결코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밖에서 만나면, 뭐든 다 이야기해줄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사무실로만 가면, 위대해지고 만다.  
  울릉도 답사이래 가장 큰 실망을 받아 않은 일행은 도동을 파 해치기로 했다.  우선 이왕 높은 곳에 올라온 차에 도동의 남쪽 사면을 뒤지기로 했다.  가는 곳마다 울릉도는 부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또한 그렇다고 실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면도 있었다.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낮은 곳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집을 세 가구가 살고 있는 곳도 있다.  옛날의 울릉도 집은 일자형이며 그 안에 최소한 방 두 개와 부엌이 있기 때문에 3칸 정도이다.  이 세 칸을 각각 한 가구씩 나누어 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고 구분이 안 될까 봐 그랬는지, 도당 색을 다르게 하여 확연히 다른 가구임이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서성거려도 관심을 갖는 집이 없다.  아마, 다른 동네였으면, 틀림없이 "뭐 하는 사람들이냐?"고 나설 법도 한데, 전혀 없다.  이것도 이 동네의 특징인 것이다.  조그만 공간이 있어도 무엇인가를 심어 놓았다.  그 좁은 공간에 우딸도 설치하였다.  바람이 많긴 많은 가 보다.  좀 더 위로 올라가니, 나무 사이로 두꺼운 철망이 보인다.  돌이 굴러 떨어지는 막아주는 것이란다.  알프스에서 보았던, 눈사태 방지용 벽이 떠올랐다.  아마, 이곳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옛날에 눈이 많던 시절에는.  북쪽 사면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해를 좀 더 볼 수 있는 곳이라 서쪽보다 집 값이 좀더 나갈 것 같다.  여관도 많다.  중요한 시설은 대부분 북쪽 사면에 집중된 듯하다. 군청, 경찰서, 등기소, 읍사무소, 호텔 등.
  오늘 배는 들어오지 못한다.  울릉도는 동해 중부 해상에 떠 있다.  울릉도로 들어오는 배는 포항에서 출발하는데, 그 곳은 동해 남부에 해당한다.  그러니 여기에 배가 들어오려면, 두 해역에 폭풍주의보가 없어야 한다.  참으로 들어오기도 어렵고, 떠나가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같은 동해 중부에서 오는 배도 있지만, 수리 중이다.  사실은 겨울철에 승객이 적은 항로는 수리를 핑계 대고 쉬는 것이 일반이다. 섬에서 자란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보아왔다.  어찌 되었든, 일행의 실망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하루가 지났다.  오늘도 걷기로 했다.  물론 눈을 뜨자마자 기상대로 전화를 해보지만, 별 희망적인 소식이 없다.  서울은 눈이 내린다는데, 여기는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모두 집에서 잠이나 잤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럴 때 늘어지면, 망하지.'  이제는 식량도 비상체제로 들어갔다.  비상식량에 손대는 사람은 당장 일행에서 퇴출이라고 겁을 주고, 아침은 라면으로 때웠다. "5분 후 출발!"  그래도 모두 따라 나선다.
  오늘은 저동을 뒤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천연기념물 중에 유일하게 보지 못한 도동 동쪽 산(살구남)에 있는 섬댕강나무와 섬개야광나무군락(천연기념물 51호)을 보고 싶기도 하다.  비가 내리는 것이 걱정이다.  저동재를 막 넘으려는데, 오른 쪽으로 길이 있다.  일행에게는 저동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 같다하고, 살구남으로 가는 길은 아닌가 하고 들어섰다.  도동의 공동묘지였다.  이상한 것은 고개를 넘어 섰는데도 도동이다.  웬만한 곳은 고개를 넘어서면, 마을 이름이 바뀌던데.  저동천이 흘러오는 저동 포구에는 마을이 셋이 있다.  큰 모시게, 가운데 모시게, 작은 모시게.  큰 모시게까지 도동인 모양이다.  그런데 분명히 한 동네이다.  '왜, 저동과 도동으로 나누었을 까?' 모두의 의문이었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하였다.  
  나는 저동의 남쪽 사면 동네를 판자촌이라고 부른다.  '무슨 소리냐'고 욕을 할지는 모르겠다.  지난 봄에 저동 전경을 찍어볼 생각으로 높은 곳을 찾아올라 간 것이 바로 이곳이다.  골목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곳도 들어 가보면 골목이다.  한 사람 정도 빠져나갈 수 있다하면, 모두 중요한 골목이다.  웬만한 골목에는 계단이 있다.  이런 곳을 비집고 올라가는데, 구성 예술을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올라 가보니 점차 판자촌에 가까워진다.  결국 저동 전경을 찍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판자촌을 보았다.  지붕은 모두 구성 예술작품이 오징어 덕장이다.  오늘은 오징어들이 단체로 우산을 쓰고 있다.  
  오징어 공판장에서는 할복작업이 한창이다.  동해 중부는 폭풍주의보가 없어서, 오징어가 들어온 모양이다.  한 곳에서 할복이 끝난 오징어를 바닷물에 씻어내고, 건조장으로 가기 위해서 대나무에 꽂고, 차에 싫고 정신이 없다.  전에는 딸딸이를 주로 이용하였는데, 대부분 조그만 트럭이 운반을 대신하고 있다.  이곳의 오징어는 저동은 물론, 멀리는 남양까지도 간다.  해안을 따라 작은 모시게 쪽으로 걸었다.  가운데 모시게를 지나는데, 구성 예술의 극치를 달린다 해야 할 지.  공간이란 것을 200%정도는 이용하는 것 같다.  가파른 경사지에도 집을 지었고, 마당이 없으니, 허공으로 마당을 만들기도 하였다.  아마 울릉도 밖에 없는 광경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동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기후와 관련된 경관이 비교적 적고 지형과 관련된 경관이 두드러지다.  동풍을 제외하고는 바람으로 막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어업전진기지가 되었는가 보다.  
  내수전 약수터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이 길은 천부로 가는 중요한 길이었다.  요즘에 들어서, 다른 길(태하령길)이 포장되고, 배가 자주 다니면서, 이용이 줄었다.  주민들 이야기에 의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내수전은 몇 가구 안 되는데, 저동처럼 아늑하지 못하다.  그것을 설명이라도 하듯, 해안가의 동백나무도 남서쪽으로 상당히 편형되었고, 우딸도 눈에 띤다.  그러고 보면, 바람 부는 곳에는 어디든 우딸이 있는 모양이다.  봉래폭포를 가야 하는데, 다음으로 남겨 두었다.  지난 봄에도 그랬는데, 아마 다음에도 그럴지 모르겠다.  입구가지 가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대단하다.  거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강하다.  좁지만 직선으로 뚫려 있는 골짜기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저동 가게에 들러서 고등어 값을 물었더니, 서울의 두 배 정도이다.  오징어 이외는 모두 비싸다는 것이다.  해산물마저도.  이제 내 다리인지 누구 다리가 내 몸에 붙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일은 배가 뜰까?'  내일은 배가 떴으면 좋겠다. 이렇게 다시 하루가 갔다.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었다.  모두 갈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 찼다.  항구로 나가 보았다.  조용하다.  배가 들어온지 3일정도가 지나니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적막이 감돈다.  이 것이 울릉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적막해지는 곳.  그저 하늘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했던 울릉도.  그것을 우리가 들어와서 다 망쳐놓은 것이다.  조용했던 섬을 관광이라고 들어가서 하나 둘 망쳐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고향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울릉도만이라도' 하던 지난 봄이 떠올랐다.  
  한숨을 내쉬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포구에 남아 있던 한 친구에서 "배가 안 보이는 데요."라고 연락이 왔다.  며칠째 바다만 바라보던 친구이다.  오늘도 눈이 빠지도록 몇 시간째, 저 서쪽 바다만 쳐다보고 있다.  배가 도착해야 할 시간인데, 배가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 저 마음이 울릉도 사람들의 마음일 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아야 하는 마음.  섬의 낭만이고 뭐고 없다.  오로지 높은 파도와 급경사와 그리고 바람과 싸워 이겨내야 했던 사람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울릉도 사람들이다.  내 어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까?  우리는 그간 그들의 껍데기만을 둘러 본 것이다.  그러고도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고립된 생활을 하면, 온갖 유언비어가 돌아다닌다.  유언비어였으면 하는 소식이 접수되었다.  오늘 배는 안 뜬 다는 것이다.  그럼 오던 배가 돌아갔냐고 했더니, 그것은 아니다.  오기는 오는데, 오늘은 못 간다.  도착 예정 시간에서 세 시간이 지났는데, 멀리 배가 보인단다.  얼른 포구로 나갔다.  배가 들어왔을 때의 모습이 궁금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배가 항구로 들어왔다.  잔잔해 보이는 바다인데도 배는 여전히 울렁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오던 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갑자기 조용하던 부두가 시끌시끌하다.  다시 울릉도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오던 날과 똑 같다.  겔로퍼 택시가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피켓을 든 민박 아저씨들이 '나를 따르라'하고 있고, 멀리에 지친 승객들은 그저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모양이다.  30분 가량을 서 있었더니, 항구가 정리되었다.  배는 내일 새벽에 간단다.
  포항의 바람은 차갑다.  

 

* 여기의 이야기는 2000년 1월 12일부터 15일까지의 이야기이다.  잘 모르면서, 그리고 글재주도 없으면서 그 아름다운 울릉도의 이야기를 마친다.  중요한 것은 가서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가본 것처럼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면서 울릉도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