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겨울'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썰매를 타고 동네 언덕길을 내 달리는 어린 아이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로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걸어가는 연인들. 화롯불에 모여 앉아 김치에 군고구마를 먹던 기억. 혹은 도서관에서 나오다 오뎅 국물을 떠먹던 기억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추울 때 가능한 것이다. 만약, 겨울이 덥다면, 썰매를 탈 수도 없고, 눈이 쌓일 리도 없다. 나뭇가지가 앙상할 리도 없고, 두툼한 외투를 걸칠 필요도 없다. 이 것이 모두 춥기 때문이다. 그렇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사전에 찾아보니, 겨울은 날씨가 매우 춥고, 낮이 짧으며 밤이 길다고 한다. 이 말은 거꾸로 쓰여야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태양열을 많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추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의 표면을 덮이고 식히는 것은 거의 태양열과 관련이 있다. 태양열이 지표면을 데우고, 데워진 지표면은 열을 내어, 그 열이 다시 대기를 데워준다. 태양열은 날씨변화에 매우 중요하다. 조금만 변하여도 기후변화라는 큰 이변을 가져온다. 과거에 4차례 정도의 빙기와 그 사이의 간빙기가 있었던 것은 태양열의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큰 변화를 경험할 수는 없다. 다만, 일년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여름이 오면 덥고, 겨울이 오면 춥다. 그리고 그 사이의 봄과 가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생활하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이런 일년 주기의 태양열의 변화가 계절의 변화를 가져온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태양열을 받는 각도와 시간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중위도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겨울철에는 태양열을 받는 각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받는 시간도 짧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이라는 큰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계절의 변화가 더욱 명확하다. 겨울이 되면서 태양고도가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우리나라 북쪽의 시베리아 평원이 빠르게 식어간다. 반면, 우리나라 남쪽의 태평양은 서서히 식기 때문에, 대륙의 기온이 훨씬 낮은 상태로 놓인다. 기온이 낮은 대륙에서는 무거워진 공기가 지표 부근에 계속하여 쌓이기 때문에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주변보다 공기밀도가 높아진 것을 고기압이라 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 겨울철을 지배하는 시베리아 고기압이다. 일기예보를 할 때 이야기하는 시베리아기단은 이 고기압에서 만들어진다. 보통 공기는 밀도가 높은 차가운 곳에서 더운 곳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는 그 차가운 시베리아 공기가 태평양 쪽으로 이동하는 통로에 해당한다.
  시베리아에서 만들어진 찬 고기압이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칠 때는 거의 시베리아에 가까운 날씨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매서운 한파가 찾아와 때로는 기상청에서 한파 주의보를 발표하기도 한다. 만약, 계속하여 시베리아에서 찬 공기가 겨울 내내 유입된다면, 우리의 겨울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추울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압이 만들어지려면 일정하게 공기가 쌓여야 한다. 그러니 고기압이 만들어지려면 적어도 일주일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일단 고기압이 만들어져 이동을 하면서 성질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동하면서 성질이 바뀐 공기가 영향을 미칠 때는 겨울이지만 비교적 따뜻하다. 성질이 바뀐 공기와 새로 만들어진 시베리아 공기 사이에는 저기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영향을 미치면 비나 눈이 내린다. 그 두 가지가 영향을 미치는 4일 정도는 따뜻하여, 우리나라 겨울철의 특징인 삼한사온이 나타난다.
  요즘 매스컴을 보면, 삼한사온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이한 오온이니, 일한 육온이니 하고 법석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선조는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주변에서의 겨울철의 기압계 이동 주기가 일주일 정도라고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대략 겨울 날씨가 3일 춥고 4일은 따뜻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전지구적으로 온난화 문제가 크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에 비하여(특히 1960년대) 겨울이 따뜻해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10여 년 간의 통계를 보면,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3℃를 넘고 있다. 과거 1월의 서울 기온은 그 이하여서 퀘펜이 분류한 D기후에 포함되었으나, 요즘은 C기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지속적일지 혹은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의 이런 온난화 현상이 삼한사온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우리 선조는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살아왔다. 그 중 하나가 두꺼운 겨울 옷이다. 좀처럼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지 않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처음 서울이란 곳을 향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무엇을 입고 가야하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면, 서울은 겨울철의 웬만한 날은 영하라는데, 과연 얼마나 추울 것인가? 영상의 날씨인데도 이렇게 추운 데, 과연 매일 영하인 곳은 얼마나 추울까?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두꺼운 옷을 입고 서울로 향하였던 기억이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서는 오히려 더워서 방에 있기 괴로웠던 기억이다. 서울 사람들은 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온 문을 비닐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방바닥은 뜨거워 앉기도 어려웠고, 마루에는 난로까지 때고 있었다. 아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리 춥지 않았던 고향 제주도에서는 기껏해야 굴묵이나 때고, 방안에 화롯불이나 가운데 두는 것이 고작이었다. 요즘에 도시에서는 보온을 위해서 단열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중창도 하고,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을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렇지만, 시골을 다니다보면 아직도 당시를 연상하게 하는 시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산간지역으로 가면 더욱 그렇다.
  왜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요즘도 그럴까? 아마도 추워야 한다는 생각은 보리 농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겨울이 춥고 눈도 많이 쌓여 있어야 보리 농사가 풍년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라고, 병충해가 월동을 하기 때문에 다음 해의 농사를 망쳐놓았다. 웃자란 보리는 추위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에, 꽃샘추위라도 만나면, 동사할 수도 있다. 요즘도 추워야 제 맛을 찾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두꺼운 모피를 팔려면 추워야 할 것이다. 스키장에도 추워서 눈이 많이 쌓여야 장사가 잘 될 것이다. 난방기구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춥기만을 고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서민들이야 어디 그런가? 춥지 않는 겨울이 훨씬 낳다. 이제는 보리 농사도 점차 줄고 있고, 아무래도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 것 같다.